팔락… 팔락…
빼곡히 들어선 책장과 수많은 책들…
책의 골목 사이를 누비며 코 끝을 스치는 곰팡이의 냄새…
현재 내가 서 있는 고요한 이 곳은 학교 내에 위치해 있는 도서관이다.
[08. 자연/식물도감]
책장 위에 있는 푯말에 보이듯이 나는 도서관 안에서도 8번 라인인 자연/식물도감 쪽에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다.
교문을 넘어 학교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책가방을 던지듯 놓아 두고 곧바로 이곳으로 왔다.
내가 도서관의 그 많은 책장과 코너들 사이에서 유독 자연/식물도감 코너를 뒤적거리는 이유는, 오늘 아침에 기찻길 앞에서 본 환상과 학교 교문에 나타난 그 환상 때문이다.
환상 속에 나온 분홍빛 많은 꽃잎을 보유한 그 나무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맴돌면서 그 나무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진 것이다.
책장을 뒤적거린 지 어언 1시간이 넘어갔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나무의 존재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것과 비슷한 나무조차 식물도감에는 나와있지 않은 것이다.
대체 무엇 이였을까, 그 나무…
뒤적거리던 두꺼운 식물도감을 제자리에 꼽아둔 나는 한숨을 쉬며, 교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곳에는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 졌다.
학교에 도착해서 안주머니에 보관한 꽃잎을 꺼내어 보았을 때, 교복 안주머니에 있던 그 환상 속 꽃잎은 분홍빛 투명한 조각이 되어 있었다.
내 추측이 정확하다면, 아마 교문 앞에서 심장이 뛰고, 그 꽃잎이 뜨거워 졌던 그때 꽃잎에서 조각으로 변신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나는 교복 안주머니에서 꺼낸 조각을 이리 저리 돌려보며, 책장에서 방금 꺼낸 ‘한국의 꽃들’ 을 뒤적이기 시작하였다.
띠링~ 자습시간이 종료됩니다.
꽃에 관련된 책을 꺼내서, 그 꽃잎을 찾아보겠다는 나의 생각은 자습시간을 마치는 벨 소리와 동시에 무너져 버렸다..
‘이제 슬슬 돌아가서 1교시를 준비해야겠군’
책을 덮어버린 나는 그 책을 들고 도서관의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학교에서는 자습시간에 자유롭게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이곳 독서실로 모인다.
카운터에는 역시 여러 명의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자습이 끝날 때까지 다 읽지 못한 책을 대여하기 위해서이다.
“이거 대여해 주시겠어요?”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 왔고, 나는 두꺼운 그 책을 카운터에 올려 놓았다.
“네, 대여일은 일주일 입니다. 학생증을 보여 주세요.”
동그란 안경을 낀 도서부원이 컴퓨터에 무언가 톡톡 치더니, 학생증을 요구하였다.
아 참… 책을 대여 하기 위해서는 학생증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는 급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그 안에 있는 학생증을 꺼내었고, 곧바로 도서부원에게 학생증을 내밀었다.
도서부원은 나의 학생증을 받아, 카드를 긁는 부분에 학생증을 긁었고, 곧바로 인증이 되었는지 마지막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것을 처다 보고 있던 나는 학생증을 전달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같은 손에 들고 있던 꽃잎의 조각을 잊고 있었다.
챙….
꽃잎의 조각이 땅으로 떨어졌고, 그 조각에서는 맑고 청아한 고음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깜짝 놀라 조각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고, 갑자기 밝은 빛을 내 뿜는 조각의 이상반응에 재빨리 오른 손을 들어 팔목으로 눈을 가렸다.
“저기… 괜찮으세요?”
팔목으로 눈을 가린 지 얼마쯤 되었을까? 나의 바로 앞에서 도서부원의 목소리가 들렸고, 내가 오른손을 눈에서 때었을 때, 나의 눈 앞에는 도서부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처다 보고 있는 것이 볼 수 있었다.
“아, 갑자기 어디선가 밝은 빛이…”
“빛이요?”
빛이라는 말에 도서부원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가 대여 신청을 한 ‘한국의 꽃들’ 을 건내었다.
“에… 밝은 빛 같은 게 안 비췄나요?”
나는 그 두꺼운 책을 두 손으로 받으며 도서부원에게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빛 같은 건 없었는데요?”
이상했다.
도서관 전체가 환해 질 정도로 밝은 빛이었을 텐데… 느끼지 못했다니…
그렇다면 그 빛은 환상처럼 나 밖엔 안 보이는 빛 이거나, 아니면 도서부원이 장님일 것이다.
아… 장님도 빛은 느낀다고 했었던가?
아무튼 나는 ‘한국의 꽃들’을 들고 갈려다 그 책이 생각보다 무지 무거워서 양손으로 책을 껴안듯이 들고는 도서관 밖을 나섰다.
치잉….
도서관의 자동문이 열리고, 나는 낑낑 거리며 그 두꺼운 책을 들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을 향해 걸어가던 나는 갑자기 무언가 중요한 것이 생각나서 발걸음을 멈추고는 외쳤다.
“앗! 내 학생증!”
책을 빌릴 때 분명 학생증을 낸 거 같은데, 받은 기억은 없었다.
난 당황해서 뒤로 돌아섰고, 다시 도서관을 향해 돌아가던 중 자동문 앞쪽에 어디서 많이 보던 카드가 떨어 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잃어버린 내 학생증 이였다.
아마 도서부원이 책 위에 학생증을 올려서 나에게 건내었던 모양이다.
“에휴…”
책도 무거운데, 학생증까지 주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도서실 문 쪽으로 돌아간 나는 두꺼운 책을 발 밑에 던져버리고 학생증을 주워 지갑 속에 넣었다.
지갑을 주머니에 잘 챙겨 두고 무거워서 아무렇게나 던져 둔 ‘한국의 꽃들’ 을 두 손으로 안아 들고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꽤나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곧바로 교실로 향할 생각 이였지만, 이상하게 나의 앞에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하얀색 벽이 있었다.
쿵… 철퍼덕…
“아야야”
나는 무언지 모르는 푹신한 벽과 충돌하여 뒤로 넘어졌고, ‘한국의 꽃들’은 내와 충돌한 그 벽이 들고 있었다.
덕분에 책에 깔려버리는 불상사는 면했지만…
‘아? 벽이 책을 들고 있다고?’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는 키가 180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우리학교 교복바지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우리학교 학생 같았지만, 난 처음 보는 얼굴 이였다.
급하게 뛰어온 듯 와이셔츠의 윗부분 단추를 풀어헤친 상태였고, 내가 넘어지면서 던져버린 ‘한국의 꽃들’ 을 한 손에 들고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 큰 책이 한 손으로 들어 지는구나…’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 남학생을 빤히 처다 보았고, 그 남학생은 내 쪽으로 다가 와 ‘한국의 꽃들’ 을 나의 옆에 놓아두고는 도서관 쪽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미안, “
벽처럼 나타나서 번개처럼 사라진 아이…
나는 그 아이가 사라진 도서관 쪽을 처다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일어나 손과 옷을 턴 뒤 책을 챙겨서 빠른 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이제 자습시간이 끝났는데, 지금 도서관에 왜 가는 거지?’
치익……
띠리링~ 1교시 시작합니다.
‘헉헉헉…’
내가 급히 교실에 들어섰을 때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고, 반장은 교실 문 앞에서 헉헉 거리는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입을 뻥긋 거렸다.
뭐, 굳이 해석해 보자면 저 뜻은
‘세이브’
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와 바로 옆의 창문을 열었다.
아직 4월 겨울이라 차가운 바람이 나의 피부를 스쳐왔고, 빠른 걸음으로 오느라 힘들었던 나는 그 차가운 느낌이 좋아서, 눈을 감고 잠시 그 온도를 음미하였다.
땀이 다 식은 뒤, 들고 왔던 ‘한국의 꽃들’을 책상 밑 서랍에 넣으려 했지만, 무척이나 두꺼웠던 그 책이 들어갈 리가 없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뒤에 있는 사물함까지 걸어가서 그 책을 넣어두었다.
내가 이런저런 행동을 할 정도로 1교시가 시작 된지 꽤 오래 되었지만, 선생님은 들어오시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반장이 선생님을 찾으러 교무실로 갔다고, 잠시 뒤, 반장과 함께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반장이 나간 뒤 아이들이 잡담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습시간에도 담임선생님은 이곳에 있지 않으셨다고 한다. 대체 뭘 하면서 땡땡이를 치신거지?
“미안, 내가 좀 늦었지?”
1교시는 분명 영어시간인데, 왜 담임선생님이 들어온 건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었다.
아! 혹시…
영어 선생님이 오시지 않으신 건가?
나는 영어시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속으로 영어선생님이 오지 않으셨기를 빌었다.
‘제발…. 영어선생님이 없다고 말해 주세요…’
“오늘 새로운 전학생이 왔어, 자 들어와”
‘쳇….’
영어 선생님은 학교를 오신건가… 이런….
아, 그보다 전학생이라니?
영어선생님이 학교에 오셨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내가 전학생의 존재에 대해 눈치를 챘을 때, 교실의 앞문이 열리고 그 곳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와서 교탁의 옆쪽에 멈추어 섰다.
그 전학생은 키가 180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 이였다
‘앗! 아까 도서관에 그 애 잔아?’
나는 한번에 그 아이가 도서관에서 나와 충돌한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 전 ‘한국의 꽃들’을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장면이 너무 기억에 남아서….
“자습시간에 소개시켜 줄려 했는데, 이 아이가 사라지는 바람에…”
선생님은 말을 이어가며 그 아이를 원망하듯 째려보았지만, 그는 그걸 느끼지 못하는지 그저 앞만 묵묵히 처다 보고 있었다.
한참을 째려보던 선생님은 GG를 선언 한 듯 한숨을 푹 쉬더니, 그 아이의 등을 떠 밀었다.
“자자, 일단 자기소개부터…”
그 남자아이는 선생님이 떠미는 힘에 꿈쩍도 않고, 그냥 자신의 의지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이노진. 앞으로 잘 부탁 해.”
이노진 이라는 아이가 인사를 하는 동안 모두의 시선은 그가 아닌 그의 뒤에서 아직까지 그를 밀고 있는 선생님을 향해 있었다.
여선생님 치고는 꽤나 한 과격 하는 선생님 이였는데, 오늘만큼 가련해 보인 적은 없었다.
선생님은 드디어 미는 것을 포기했는지, 복수를 하는 건지, 노진의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말했다.
“어디 보자… 그럼 너는…. 하루야?”
선생님은 노진이 앉을 자리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고, 나는 당연히 한자리 딱 비어있는 반장 옆으로 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야?”
잠시 멍하게 있던 나는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여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았고, 그 곳에는 나를 주시하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네에?”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처다 보았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 딴생각 하고 있다는 걸 들켜버린 건가?’
이거, 뭐라 변명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하루, 너… 반장옆자리로 갈래?”
“네…. 엑?”
아니… 왜 앉아서 잘 놀고 있는 나를 반장 옆자리로 보내는 거지?
딴생각 하고 있다고 중앙 자리로 보내는 건가? 그렇다면 말로만 듣건 귀향?
아… 창문 옆 나의 파라다이스가…. 흑….
선생님은 노진의 등을 톡톡 치더니, 하루 쪽을 가르치며 말했다.
“그리고 노진이는 하루가 있는 저 자리로 가렴”
“네 감사합니다.”
아아… 나의 자리가… 나의 파라다이스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더니 전학생 주제에 내가 새학기 초반부터 찍어 둔 명당자리를 냉큼 먹어 버리다니…
난 울먹이는 표정으로 반장을 처다 보았다.
반장은 내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건만, 반장의 얼굴은 무척이나 환해져 있었다.
반짝~
그리고 그녀의 눈은 반짝였다.
‘뭐…뭐지….’
조금 당혹감을 가지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나는 책들을 챙겨 들고 반장의 옆자리로 이동하였다.
드르륵…
의자에 앉아보니 교탁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런….
앞을 바라본 나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그 어색함을 이기지 못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턱을 괴고, 나를 빤히 처다 보는 반장의 얼굴이 보였다.
“헛?”
나는 예측하지 못한 반장의 행동에 당황하여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뺏고, 반장은 나의 반응이마음에 든 건지, 더욱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 하루랑 짝이 되다니… 꿈만 같은걸?”
“아하하하하…”
왠지 눈을 반짝이며 내 얼굴만 빤히 처다 보는 반장이 무서워 졌다.
“하루는 지금부터 내가 보호해 줄께! 우워어~”
그리곤 반장은 다시금 아침의 동교 때 와 같이 불타올랐다.
“반장…. 뜨거워…”
정말 반장만 있으면, 한겨울 난방비 없이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본능(?) 에 불타오르던 반장은 나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양손을 쫙 펴서 박수를 탁 치며 말했다.
“앗차! 우유를 안먹었다!”
“……”
노진이 완벽히 나의 파라다이스를 점령하여 버렸고, 선생님은 그 장면을 본 뒤 교실문을 열고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다시금 나의 파라다이스를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었고, 지금까지 나에게 시원한 바람을 제공한 창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였다.
치익…
창문 쪽을 바라보던 나는 반장 쪽에서 갑자기 종이 찢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반장이 가방 속에서 500ml 짜리 우유를 꺼내 우유의 입구를 양손으로 잡고 뜯고 있었다.
‘아, 아침에 고이 모셔두었던 그 우유군…’
반장은 해맑은 표정으로 우유를 응시하였고, 곧 우유를 먹으러 할 때…
드르륵…
갑자기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열린 교실문으로 1교시 수업인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고 계셨다.
우유에게 정신이 팔려 노예가 되어버린 반장에게 선생님이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해 급히 반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반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차렷! 경례!”
“안녕하십니까~”
반장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뒤, 멍하니 자신을 처다 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서랍 밑에서 무언가 꺼내어 흔들어 보였다.
그것은 500ml 우유…
자세히 말하면 빈 우유곽 이었다.
‘5…500ml 를 1초도 안 걸려서 다 먹은 거야?!’
역시 반장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250ml 도 힘든데, 500ml 우유를 1초도 안 걸려서 마시다니… 이건 마신다고 해야 하는 건가 흡입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무튼 반장의 기술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전학생 때문에 꽤나 시간을 끌었기에, 선생님은 들어오자 마자 곧바로 수업을 진행하였고, 영어수업은 역시 예상대로 지겨웠다.
그냥 번역기를 쓰면 되는 거지, 왜 굳이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 건지…
평소 같았으면 살짝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멀리 보이는 산을 응시 하고있겠 지만, 지금 내 자리에서는 교탁 앞… 선생님의 바로 눈 앞이기에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몰래 곁눈질로 나의 엘리트 명당 자리였던 창가 옆자리를 바라보니, 아까 전 내 자리를 차지 해버린 노진이 살짝 열린 창문에서 불어 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멀리 보이는 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 자리가….
나의 파라다이스가…
난 급격히 슬퍼졌다.
눈물을 글썽이며 반대쪽 자리에 앉아 있는 반장을 처다 보았지만 반장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까부터 계속 싱글벙글이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혹시….
아까 우유를 1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마셔 버린 것이 세계신기록인가?
아니, 그 이전에 그런 것이 공식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건가?
나는 다른 생각에 잠길 좋은 소재로 우유 마시기 올림픽을 지정하고 망상의 나라에 빠져 허우적 대며, 기나긴 영어시간을 버텨갔다.
망상에서 반장은 세계대회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렇게 1교시가 끝이 났고, 선생님은 다음시간까지 할 숙제를 내어 주고는 교실문을 나가셨다.
휴… 드디어 쉬는 시간인가…
나는 책상에 쓰러지듯 엎드려 긴 숨을 내쉬었다.
부스럭 부스럭
‘이건 또 무슨소리지?’
또 반장 자리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반장 쪽으로 돌렸고,내 시선에 들어온 반장은 아까 전 1초만에흡입해 버리고 책상 밑에 넣어 두었던 우유팩을 꺼내어 들고 반으로 접고 있었다.
반으로…. 그리고 또 반으로…
계속해서 우유팩을 접어나가던 반장은 우유팩의 두께가 넓이와 일치할 때쯤이 되자 조그만 골프공 만한 크기의 우유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반장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자리에서 일어난 반장을 따라 고개를 올렸다.
반장은 그 우유팩을 들고 어딘가를 잠깐 주시하다가, 교실의 뒷문을 향해 힘껏 강하게 우유팩을 집어 던졌다.
휘이익…
우유팩이 시간과 공간을 가르고 엄청난 속도로 교실 뒷문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우유팩은 순조롭게 뒷문을 향해 날아 갔고, 날아가는 괴도 안에 부반장 영환이 있었다.
“아, 요즘 따라 왜이리 목이 결리지?”
맨 뒷자리 뒷문 옆에 있던 영환은 목이 아픈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렸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던 그 우유팩은 그의 귓볼을 스치고 지나가, 교실 뒷문에 박혀버렸다.
쉬익…
“쳇”
반장은 안타깝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고는 문에 박혀버린 우유팩을 빼기 위해, 교실 뒤쪽으로 걸어갔다.
부반장 영환은 놀란 건지, 동상이 되어버린 듯 그 자리에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고, 반장은 그를 그저 스쳐 지나갔다.
반장은 영환을 맞추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던 걸까, 아니면 우유팩을 휴지통에 넣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나는 그 부분이 꽤나 궁금했고, 답은 금방 나왔다.
반장은 문에 박혀있던 우유팩을 빼서는 영환의 머리로 집어 던졌다.
콩… 땡그렁…
우유팩은 굳어버린 영환의 뒷통수를 강타한 뒤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나이스, 굿샷”
그제서야 반장은 만족한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로 돌아왔다.
반장은 아마 영환을 맞추는 것과 우유팩을 휴지통에 넣는 것, 둘 다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2교시, 3교시, 4교시가 지나갔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가방 속에서 도시락 대신 들고 온 크림빵을 꺼내었고, 반장은 나의 옆에 바짝 다가와서 자신이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어 들고는 같이 먹자고 권유하였다.
반장이 가지고 온 도시락은 그 이름도 유명한 3단 도시락 이였다.
도시락의 맨 밑에는 밥이 있었고, 2번째 칸에는 반찬들이…
마지막 칸에는 과일들이 있었다.
나는 준비해온 크림빵을 얼른 먹은 뒤, 반장의 과일 도시락에 담긴 복숭아를 집어 먹었다.
내가 복숭아를 먹는 모습을 빤히 처다 보던 반장이 물어왔다.
“하루야, 오늘아침에 교문에 들어올 때 갑자기 왜 멈춘거야?”
“우물… 응?”
교문이라…
아, 환상을 봤던 그때를 이야기 하는거구나…
난 교복의 안주머니 깊숙이 고이 넣어둔 조각이 되어버린 꽃잎을 꺼내어 반장에게 내밀었다.
그 조각은 은은한 분홍빛 빛을 내며, 햇빛에 빛나는 것이 마치 보석 같았다.
“우와! 이쁘다~ 분홍빛이 너무 예뻐”
반장은 그 조각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눈을 반짝이며 나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 조각을 집어들었다.
“이걸 우유에 넣으면 복숭아 맛 우유가 되는걸까?”
반장은 입맛을 다셨다.
반장의 당황스러운 아이디어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그런가? 나중에 한번 넣어 봐야겠다’
반장은 그 조각이 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재미 있는 건지 그 조각을 햇빛에 계속해서 비추었고, 그 반사된 빛은 교실 여기저기로 흩어지며 교실 전체를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반장은 실컷 가지고 놀았는지, 만족하는 얼굴로 그 조각을 다시 나의 손에 쥐어 주었고, 나는 조각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기 위해 나의 안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그때!
어디서 나타난 커다란 손이 움직일 수 없도록 나의 팔목을 강하게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있는 자리에 갑자기 그늘이…
나는 놀라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곳에는 노진이 서있었다.
손목을 강하게 잡은 노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표정을 살폈지만, 그의 무표정이였다.
옆에 있던 반장이 급히 노진을 밀쳐내었고, 노진은 나의 팔목에서 손을 땐 뒤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계속해서 나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가며 주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인간이 어떻게 봄의 조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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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1편(1), 1편(2), 1편(3)
같은걸로 나가긴 식상해서... 대충 임시이름을 붇이면서 넘어가고 있습니다 >_<
일단 아직까진 성실연재 모드입니다~
모두들 좀 미리미리 써두고 보강해서 완성작을 업로드 해 보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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