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릭....
어둠 속 인간계 마지막 문이 열리고 마왕의 재물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자신을 비관하며 걸어온다.
그녀가 터벅터벅 무너지는 마음을 이끌고 걸어가는 이승의 마지막 종착지는 어느 건물의 옥상...
고장나버린 TV의 화면처럼 지직 거리며 흔들리는 옥상 밖의 풍경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걸어가는그녀의 앞에 옥상난간 위를 아슬아슬하게 올라서있는 새하얀 피부와 새하얀옷을 입고 커다란 날개를 곱게 접은 천사가 보였다.
천사를 향해 터벅터벅 다가오는 소녀...
소녀는 당연히 정해진 움직임이라는 듯 아무런 망설임 없이 천사의 옆에 앉아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
말없이 초점 없는 눈으로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는 천사...
그런 천사를 가만히 살펴보던 소녀는 천사의 축 처진 어깨 위 아슬아슬 매달려 팔랑팔랑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요동치는 그녀의 날개를 발견하였다.
“필요 없는 날개를 다셨네요?”
“......”
조금 안색이 변해버린 천사...
소녀는 난간에 걸터앉자 발장난을 하다가 그녀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일어나 천사와 눈을 맞추며 날개를 쓰다듬었다.
“이런 날개 따위는 짐이 될 뿐이네요... ”
“네... 이런 건 무거운 뿐이죠,..”
굳게 닫쳐서 절대 열리지 않을듯했던 천사의 입이 소녀의 주문에 열리고...
소녀는 그녀의 날개를 자신의 볼로 쓰다듬으며 천사를 불상하다는 눈빛으로 처다 보며 말했다.
“저는 잘 알고 있어요. 날개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소녀를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천사...
그녀의 눈에서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한 방울의 이슬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네에... 무거워요...”
천사의 눈물...
그녀의 날개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던 소녀는 손을 들어 천사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필요 없는 날개 따위 그냥 벗어버리세요. 난 당신의 아픔을 잘 알고 있어요. 무거운 날개... 정말 무거워 보여요...”
“흑흑... 정말... 무거워요...”
흐느끼는 천사...
소녀는 그런 천사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난간에 앉도록 부축하며 말했다.
“자... 이제 무거운 날개에서 벗어나요. 괜히 날개를 달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누가 뭐라 해도 당신만의 인생이니까요. 날개를 달지 안 달지는 당신이 결정해야 되요.”
소녀는 흐느끼는 천사의 얼굴을 자신의 품에 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소녀의 동정이 천사에게 도움이 된 걸까? 조금 진정이 되는 듯 그녀의 흐느끼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고, 초점 없는 눈으로 소녀의 품에 안겨 그녀를 바라만 보던 천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날개는 꼭 있어야 한다고...”
천사의 걱정에 소녀는 천사의 얼굴을 들어 자신의 얼굴과 마주보았다.
아직 눈물이 조금 남아서 붉게 상기된 천사의 눈...
정말 그녀의 아픔을 헤아린다는 듯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소녀의 눈...
그녀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고, 진실하고 순수한 눈빛에 서로를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날개 따위 무겁기만 하고... 당신이 힘든 걸 나는 잘 알아요. 자... 이제 제가 당신의 편이 되겠어요.”
“아... 고마워요.. 흑...”
“나는 당신의 아픔을 잘 알고 있어요...”
소녀는 일어나 천사의 날개를 잡았고, 천사는 소녀의 도움을 받아 무겁게 자신의 어깨 위를 짓누르던 날개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등이 한결 가벼워진 천사는 자리에서 일어서 허리를 피고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정말 가벼워 졌어요! 이제 정말 모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날개를 때어버린 천사의 기운찬 소리를 들은 건지 만 건지 소녀는 난간에 안자서 천사가 때어버린 날개만 쓰다듬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날개가... 정말 곱네요...”
“하지만 날개는 그저 무거울 뿐이에요!”
하늘을 처다 보고 기쁨에 차 있던 천사는 소녀의 이상한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를 바라보며 외쳤지만, 소녀는 그 외침을 들은 건지 만 건지 그저 새하얀 날개를 자신의 품에 꼭 껴안은 채 서서히 일어날 뿐이였다.
“하지만 날개는 꼭 필요한 거 에요.”
“네?”
날개를 꼭 껴안고 절대 때지 않겠다는 듯 핏줄이 서 있던 소녀의 팔 하나가 허공으로 들려졌고, 그 팔은 옆에서 그녀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처다 보던 천사를 어둠 속 나락으로 밀어내었다.
난간에서 밀려나는 천사...
천사를 밀어버린 소녀...
나락을 향해 기울어지던 천사는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된 건지 그저 멍하니 소녀만 처다 보다가 황급히 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날개를 퍼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날개를 가지지 않았다.
뿌리에서 올라온 영양분을 줄기가 차지해 버리고, 영양공급을 받지 못하고 바짝 말라가다가 결국 땅을 향해 떨어지는 한 떨기 목련같이...
자신이 지금 날개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닳은 천사는 황급히 소녀를 향해 손을 벌렸다.
“도와 주....”
천사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소녀에게 손을 뻗었지만 소녀는 그저 새하얀 날개를 꼭 껴안은 채 비웃듯이 천사를 바라보며 웃고 있을 뿐...
“랄라라♪ 랄라♬~ 랄라..... ”
소녀의 시야에서 천사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소녀는 콧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어둠 속 인간계 마지막 문을 향해 터벅터벅 무너지는 마음을 이끌고 걸어갔다.
“당신은... 무엇이 가장 힘든가요? 저는 당신의 아픔을 잘 알고있어요...”
그곳에는 노진이 있었다.
햇빛이 온 자리를 뒤덮는 위치의 자리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는 조용히 조금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밖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오니, 햇볕도 그리 뜨겁지만은 않은 모양인 거 같았다.
나는 노진의 그런 모습을 볼 때 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솟아 오르기 시작함을 느끼게 된다.
내자리……
내 파라다이스를 빼앗아간 악마……
나의 강력한 눈빛에 차가운 살기를 담아 노진을 노려보기 시작하자, 노진은 나의 강력한 살기를 직감 하였는지, 경치를 즐기던 시선을 때고 나를 처다 보았다.
--------------------------------잊어선 안되는 것 제 2편 2장--------------------------------
“왜 살기를 품고 처다 보는 거지?”
살기를 눈치챈 노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하였고, 나는 그 날카로운 시선을 정면으로 맞서며 애써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비겁하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번 지금 사항을 떠올리길 바란다.
상대는 신이라는데 내가 뭐 어찌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 키 160이 조금 넘는 연약한 소녀가 저 180이 넘는 남정네를 맞서 싸워서 이길 리가 없잖아? 그리고 예전에 날 죽이려 했던 그 눈빛을 되새겨 보면 아직도 소름이 돋을 정도니……
노진은 나를 조금 더 노려보다가 다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휴우……’
다시는 그런 걸로 태클 걸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4교시가 지나,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가방을 열어 고이 모셔져 있는 크림 빵을 꺼내어서 비닐의 끝부분을 잡고 뜯어서 크림 빵을 구속시킨 비닐로부터 크림 빵을 구조해 내었다.
봉인의 봉지에 의해 구속당하고 나의 손에 구조된 크림 빵을 크게 한입 배어 물었다.
빵의 틈새를 뚫고 나와 자유를 외치는 크림의 향긋한 맛이 나의 혀를 자극시켰고, 겉을 감싸고 있던 빵은 거대한 스폰지가 되어 나의 입 속에 있던 모든 수분을 빨아들여 버렸다.
몇 초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에 입안에 있던 수분이 말라버린 것이다.
미리 물을 꺼내 둬야 했는데……
일그러진 얼굴로 가방 속에 있던 물을 꺼내려 하던 나의 눈앞에 새하얀 무언가가 다가왔다.
250ml 우유팩……
나는 그 우유를 들고 있는 손을 타고 천천히 시선을 옮겨갔고, 그 시선의 마지막에는 반장의 웃는 얼굴이 있었다.
“목마를 테니 이거랑 같이 먹어~”
“고마워, 반장”
우유다~ 우유~
나는 우유를 뜯어서 수분을 빨아들여 퉁퉁 불어 버린 크림 빵의 잔해들을 시원하게 씻어 내렸다.
역시 빵에는 우유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듯 하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반장은 잠시 뒤 자신의 특제 3단 도시락을 꺼내어 들고는 천천히 도시락을 둘러 싸고 있는 손수건을 풀면서 누군가에서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쪽도 같이 와서 먹지 그래?”
그쪽이라니?
반장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놀라, 크림 빵을 한입 베어 물고도 삼키지 못하는 상태로 그녀의 시선을 살폈지만 그녀는 내가 크림 빵을 베어 물기 전과 동일하게 도시락을 묶은 손수건만을 풀고 있었다.
반장이 지목한 ‘그쪽’ 의 정체에 대해서는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반장이 지목했던 ‘그쪽’이 용케도 반장이 말한 대상이 자신임을 눈치채고, 그녀의 중얼거림에 답변을 하여서 ‘그쪽’ 의 정체가 미궁에 속에서 밝은 빛의 세계로 들어났다.
“나는 인간들처럼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 아니다.”
‘그쪽’ 의 정체는 노진 이였다.
그도 반장과 마찬가지로 전혀 시선은 반장에게 두지 않을 채 창 밖만을 바라보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신들은 처다 보지 않아도 통하는 건가? 그나저나 먹지 않아도 잘 산다니… 다이어트에 어떠한 제약도 없고 정말 부러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점심때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혼자 창 밖만 바라보고 있다면, 다른 아이들이 의심의 시선을 받게 될 것 같은데? 지금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이 목표 아닌가?”
아니…… 내가 생각하기엔 점심시간에 밥을 안 먹는다고 그다지 의심의 시선을 받거나 하지는 않을 텐데……
노진은 반장의 말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의자를 번쩍 들고서는 나의 앞쪽에 놓아두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는 옮겨졌으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창가를 향하고 있었다.
이 녀석……
나만큼이나 창문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무의식 적으로 반장을 처다 보았고, 반장은 나를 보며 방긋 웃더니, 젓가락 하나를 꺼내어 들어 노진의 앞에 놓아두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제 한번 먹어보지 그래?”
노진은 그런 반장의 행동에 조금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까 전 반장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건지 어쩔 수 없다는 듯 반장이 자신의 앞에 놓아 둔 젓가락을 들어서 반장 도시락에 있던 조그만 토막당근을 집어 들고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우두둑…… 우두둑……
응? 저거 삶거나 데친 당근이 아니었어? 생 당근이야?
자세히 보니 노진이 입에 넣은 당근은 겉 부분에 흙도 조금 묻어 있는 것 같았고, 너무 대충 씻을 티가 풀풀 나는 당근 이였다.
우두둑…… 우두둑……
맨 처음 당근을 입에 넣을 때는 뭔가 꺼림직한 표정 이였다.
하기야 내가 먹었다고 해도 덜 씻어진 당근과 익지 않아 단단하게 살아있는 생 당근을 된장도 없이 우둑우둑 씹어먹게 된다면 그다지 좋은 표정을 짓지는 못 할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노진은 조금 놀랐다는 표정과 함께, 그런 당근이 마음에 들었는지 젓가락을 이용하여 반장의 도시락에 담겨있는 또 다른 당근을 집어 들고 입에 넣기 시작하였다.
“맛있지?”
반장……
흙 묻은 생 당근을 맛있냐고 물어봐야……
반장은 열심히 당근을 씹으며 맛을 음미하는 노진을 바라보며 물었고, 노진은 그런 반장의 질문에 눈을 감으며 뭔가를 음미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음…… 자연의 향기가 느껴지는군…… 이렇게 가까이서 자연의 향기를 느껴보기는 처음이야.”
얼씨구……
자연의 향기라니.
확실히 반장이 가지고 온 당근은 익히지 않고 그냥 대충 씻어서 댕강 잘라 넣은 토막 당근이라서 채소의 특이한 향과 흙의 향기로운 냄새가 물씬 풍겨 나긴 하겠지.
그나저나 매번 무뚝뚝한 모습만을 보이던 노진이 저렇게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걸 보니 조금 생소하면서도 우습긴 했다.
반장은 그런 노진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도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인간의 음식섭취 라는 것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먹어 보니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먹고 있지. 특히 우유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무척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어……”
아…… 반장도 신이라고 했었지? 깜빡 하고 있었다.
우유에 그리운 부분이 있다니……
혹시 계절의 신이 되기 전에 우유의 여신 이였다거나, 젖소의 여신 이였다거나, 하는 김에 노진은 창문 틀 광고 아저씨 ……
반장의 여신 화 와 노진의 창문 틀 광고에 대해 머리 속으로 떠올리니 엄청 웃겼다.
500ml 우유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길거리 광고를 하고 있는 반장이라거나, 젖소복장의 반장이라니…… 한참을 입을 막고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나의 모습을 두 명의 신이 이상한 눈초리로 처다 보고 있다.
아, 생각하면 안되! 신 이라서 생각을 읽을 수 있을 지도 몰라…… 큭큭큭……
계속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머리 속으로 슬픈 생각을 20여 번 반복한 뒤에야 간신히 웃음이 멈추었다.
눈가로 조금 흘러나와버린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내며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처다 보는 저 두 신을 바라보니 갑자기 머리 속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되면 나만 빼고는 모두 밥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
뭔가 이상하게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전쟁이라도 일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 둘은 굶어 죽지 않겠지? 다이어트를 할 때도 밥을 안 먹어 버리면 그만일 테고, 도시락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잖아?
그런 생각이 드니 이상하게도 나의 처지에 대해 욱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 필을 이어 받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크림 빵을 통째로 한입에 가득 넣어 버리고 곧바로 우유를 시원하게 원샷해 버렸다.
“어머… 하루가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 도시락도 같이 먹을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은 젓가락을 하나 더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반장이 내민 젓가락을 강제로 빼앗들이 가로채어 노진이 먹고 있던 칸에 있는 당근을 마구잡이로 입에 넣어버렸다.
우두두두둑…… 우두두두둑……
역시 저 당근은 흙이 묻어 있었다.
코를 찌르는 흙 내음과 함께 마치 방어력을 강화 하기라도 한 듯 한층 더 자신의 딱딱함을 자랑하고 있는 당근의 디펜스를 씹어 부수고 있는 나를 반장과 노진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처다 보았다.
노진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먹지 않아도 살수 있는 너희들은 이 도시락을 먹을 자격이 없어!’
나의 젓가락질에 도시락에 담겨 있던 당근은 나의 입으로 사라져버렸고, 노진이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의 젓가락을 들었을 때는 이미 현란한 젓가락질에 눈과 손을 희롱당하며 도시락 칸의 모든 당근이 나의 입안으로 사라져 버리는 광경을 지켜본 뒤가 되어버렸다.
“이 앙그응 오우 에어아!(이 당근은 모두 내꺼야!)”
역시, 정의는 승리한다!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나를 노진이 노려보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내 입 속으로 사라져 버린 당근을~
나와 노진의 눈싸움을 번갈아 바라보던 반장이 웃으며 말했다.
“우훗~ 당근은 많이 있으니 천천히 먹으렴”
반장은 내가 다 먹어버린 당근이 든 도시락 칸을 빼어내 들어내었고, 반장이 가져온 3단 도시락 2번째 칸이 개봉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아찔함에 빠져들었다.
살짝 데친 당근 볶음과 커다란 당근이 마치 입처럼 만들어져서 귀여움을 자극하고 있는 미니 김밥. 그리고 그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당근 장식 데코레이션 까지……
“어째서!”
당근이라니, 당근이라니, 당근이라니……
나는 원망하는 눈빛으로 반장을 바라보며 외쳤고, 반장은 애써 나의 눈빛을 회피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슈퍼에 당근이 한 박스씩 싸게 팔길래……”
반장! 그건 비겁한 변명이라구! 당근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잖아!
나는 살짝 비웃음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노진을 상대로 GG를 선언한 뒤 점심시간 줄곧 입안에 있는 당근들만 되새김질 하였고, 노진은 볶은 당근을 향해 호기심을 나타내며 젓가락질을 시작하였다.
“음… 이번엔 불의 기운이 느껴지는 군. 그리고 부드러워, 같은 재료인데 다른 기운과 느낌이 느껴지다니…”
그래 봐야 당근은 당근이에요.
난 이제 당근이 무척이나 싫어질 것만 같았다.
입안에서 풍기는 이 자연의 향기라는걸 지녔다는 당근님의 냄새와 단단함……
이제 슬슬 턱까지 아파오기 시작하였고, 차라리 볶은 당근을 먹었으면 훨씬 나았을걸,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나는 점심시간이 거의 다 지나도록 당근을 삼켜내지 못하였고, 그것을 화장실에 가서 뱉어버릴 생각으로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장과 노진은 은색 보온병에 들어있는 당근주스를 마지막으로 그들의 당근퍼레이드를 마치고 있었고, 갑자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입을 컵에 붙인 상태로 날 처다 보았다.
나는 신이 아니다.
하지만 노진과 반장의 눈빛이 머리 속으로 해석되었다.
‘하루야 어디가?’
‘넌 또 어딜 가는 거냐?’
당근이 그리 좋을까? 난 당근만 봐도 이젠 턱이 아파 와……
난 오른손을 들어 당근으로 가득 차 부풀어 오른 나의 볼을 가리켰고, 반장과 노진은 고개를 끄덕 하고는 다시 당근주스의 오묘한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제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을 향해 나아갔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저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부반장 영환 이였다.
그는 반가운 듯 손을 흔들며 다가와서는 말했다.
“하루야~ 요즘 날씨 덥지?”
“……”
부반장이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질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답변이 오지 않자 조금 당황한 부반장 영환은 일부러 큰 모션을 취하며 다시 질문했다.
“어이쿠 더워라~ 매점에서 TV를 봤는데, 이제 겨울은 완전히 물러가고, 여름이 온 거라고 하더라고”
“……”
부반장이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두 번씩이나 질문에 답변을 받지 못하고 무참하게 무시당한 부반장 영환의 얼굴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반장에게 매번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반에서 가장 조용하고 친절해 보이는 하루에게까지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저러는 것 같았다.
이거……
하루 대 핀치 인걸……
조용히 나의 눈치만 살피던 영환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더니 재빨리 다음대사를 읽어갔다.
“그……그래! 이제 곧 점심시간이 끝나는데, 하루는 어디를 가는 거야?”
“……”
부반장이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제 부반장 영환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이 위기를 어떻게 지나갈 건지 생각하던 나의 머리 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까 전 반장에게 했던 것처럼 입안에 당근이 가득 들었다는 것을 알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나는 얼음처럼 굳어버린 영환의 어깨를 툭툭 쳤고, 영환은 얼음에서 풀려나며 나의 얼굴을 처다 보았다.
그때를 노려서 나는 재빨리 당근으로 가득 찬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볼에 조금의 바람을 넣고, 오른손을 들어 당근과 조금의 공기로 가득 차 부풀어 오른 나의 볼을 가리켰다.
영환은 멍하니 나의 얼굴을 처다 보고 있었고, 나는 반장과 같은 반응을 기대하며 영환을 바라보았다.
부반장 영환은 잠깐의 시간을 멍하니 나의 얼굴과 손가락만 번갈아 가며 처다 보다가 눈물을 머금고 나를 지나쳐, 복도의 끝을 향해 달리며 외쳤다.
“흐어억! 이제 하루까지 날 무시하고 놀리다니……”
복도의 끝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부반장 영환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 행동이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구나.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입안에 있는 당근처리를 위해 다시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에 달려서 화장실에 도착한 나는 좌변기에 입 속의 당근을 모두 뱉어 버리고 물을 내렸다.
물과 함께 돌면서 변기의 구멍 속으로 사라져 가는 당근조각들을 바라보며 당근에 대한 나쁜 기억들도 함께 흘려 보내었다.
좌변기가 있는 곳에서 나와서 손을 씻는 곳으로 나온 나는 수도꼭지를 틀어 흘러나오는 물을 두 손으로 받아 입 속으로 넣었다.
입안에 남은 마지막 당근의 조각까지고 그렇게 헹구어 버리기 위해서였다.
물을 우물거리며 수도꼭지 위에 있는 거울을 바라본 나는 화장실의 가장 뒤에 있는 창문에 누군가 걸터앉자 있는 것을 발견 하고는 놀래서 뒤를 돌아 보았다.
그 곳에는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앉자 있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하얀 장갑을 끼고는, 붉은 머리에 커다란 분홍리본을 하고 있는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찾았다. 조각을 모으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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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의 2번쨰로 넘어갔습니다 'ㅅ')/
이제 본격적인 1권의 주제인 여름편이 시작된거죠//
전에도 말씀 드렸다 싶이 1권은 1편,2편,3편,4편이 합쳐져서 여름이라는 주제로 진행될꺼에요//
다른 모,모,모,모 사람들과는 달리 전 성실연재 하고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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